일상/독서

20200224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승효상

wohlsein 2020. 2. 25. 04:20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

건축과 도시를 대하는 자세, 건축가의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나라는 건축을 부동산으로 대하는 시각이 많다. 다수의 설계사무소들이 부동산업체와 동업의 형식으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건축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 없이, 단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을 찾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만든다. 빛, 다양한 동선, 크고 작은 공간들, 다양한 방식의 진입로. 그 모든 것들이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간은 건물 속에서 살고, 건물들 사이에 살고, 그 건물들은 도시를 이뤄 인간은 또 그 도시 속에서 산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한 번 지어지면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어 사용자의 손때가 묻은 삶이 담긴 공간이 된다. 그 공간들은 편리에 따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를 하기 좋은 장소라는 인식을 준다. 만나기 좋은 장소, 사색하기 좋은 장소, 책 읽기 좋은 장소, 수다 떨기 좋은 장소 등등. 잘못된 공간은 마약 하기 좋은 장소, 돈 뺏기 좋은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건축가는 그러한 장소를 통해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는 이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주는 중요한 직업 중 하나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고 사회 전반적인 이해가 뛰어나야 한다.

 

건축가에게 의뢰인이 필수지만, 의뢰인의 잘못된 생각에 같이 빠져 들어가서는 안된다. 업무시설이나 근린생활시설을 설계할 때 그런 건축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공간의 질이 아닌 양을 통해 더 많은 수입을 내고자 하는 경우, 단기간에 지어 다른이에게 팔려는 경우. 그들의 자본이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과 그 무게감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간의 설명은 그 건축 속에서 사는 방법, 건축의 분위기, 사건과 역사를 통해 설명이 될 수 있다.

건축 설계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인간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건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30쪽)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공공영역(광장, 도로, 공원)과 같은 도시의 공공영역이 잘 조직되고 긴밀히 연결된 도시가 공공성이 발달한 선진도시이다. 사회의 체제에 따라 도시의 모습은 생물체처럼 바뀌고 움직인다.

단일 건축물이나 기념비가 갖은 상징적 가치보다는 그 주변에 담겨서 면면이 내려오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 외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 중요하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모두 하나하나의 도시이다." (33쪽)

 

"좋은 건축가, 좋은 도시계획가는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이며 좋은 건축, 좋은 도시란 그 터가 가진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어 지난 시절의 무늬와 함께 그 결이 더욱 깊어 가는 곳을 것이다. 그게 터무니 있는 건축이며 그러함으로 터무니 있는 삶이 생겨난다." (75쪽)

 

과거로부터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많이 보수적이다. 변화가 느리다. 주거공간을 생각해보면 오랜 과거의 주거와 현재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스펙터클 한 익숙하지 않은 건물들은 인간의 삶에 갑작스러운 큰 변화를 주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낯선 동선, 공간, 환경.. 그러한 공간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그것은 건축 속에 보이지 않는 폭력성이 있어 휴머니즘을 겁박하고 인간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시각적 현혹에 초점을 맞추어 삶의 진정성을 헤치지 말아야 한다." (114쪽) (스펙터클 한 건물에 대한 단편적인 비난으로도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그로부터의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이 문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이끌어낸다.)

 

"도시와 건축의 목표는 미학이 아니라 윤리.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몇 낱 건축물이나 상징물이 만드는 이미지가 아니라 건축물 사이에, 거리 위에 형성되는 우리의 이야기여야 한다. 도시의 생명은 완성된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생성되는 과정 속에 있다." (119쪽)

 

"우리의 옛 건축은 건축물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주어진 조건과의 관계를 알아야, 주변과 자연 속에서 관계를 파악해야 그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 (149쪽) (우리가 우리의 전통 건축물을 보고 큰 의미를 찾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우리의 선조는 그 공간 속에서 느끼는 풍경과 차경을 즐겼을 것이다.)

 

"건축의 근본은 장소성과 시대성에 적합해야 하며 건축의 기능에 합목적적이어야 한다." (198쪽)

 

"건축은 거주인이 시간과 더불어 완성하는 것. 건축가는 그 건축이 담아야 하는 시간을 재는 지혜를, 그 풍경의 변화를 짐작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건축가가 만드는 건축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기 마련이며, 그렇지 못하면 시간을 견디지 못해 소멸되거나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기 위한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그래서 애초에 건강한 건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203쪽)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도시와 건축은 서로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목적적 건축 공간보다는 비어있는 공간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할 수도 있다." (214쪽)

 

"우리가 일상에서 뱉는 말이 사실은 우리가 지배하여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가 원래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언어의 주인이거나 더욱 현명한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