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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

20200110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3

by wohlsein 2020. 1. 11.

철학자들의 사상과 삶을 통해 위안을 주고자 만들어진 책.

이 책 속에는 독자에게 위안을 주는 6명의 철학자가 나온다.

 

3. 좌절에 대한 위안 - 세네카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

 "좌절이란 우리의 희망과 그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구조로부터 온다."

 

 세네카는 삶 속에서 수 많은 좌절을 겼었던 인물이다.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그러한 그의 삶으로부터 나온 그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좌절에 대한 이해를 통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한다.

 마음의 준비는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하고, 좌절을 참아 넘길 수 있게 한다.

  

 좌절에 대한 반응으로 이 책에서는 5가지가 나온다. 분노, 충격, 불공평, 근심, 조롱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치한 표현이다" 세네카는 분노를 빠르게 끓어오르는 광기로 보았다. 분노의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그 후에 사람들은 후회를 하고 상대에게 미안해한다. 분노가 오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무언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섰을 때, 가졌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분노가 일어난다. 분노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해야한다. 그리고 신중해야 한다. 세네카는 부유한 사람이 분노를 많이 일으킨다고 한다. 많이 가진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심술궂은 존재들이 심술궂은 짓을 하는 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아니면 당신의 적들이 해코지하고, 친구들이 성가시게 군 적이 없었나? 당신의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하인이 못된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기대를 낮춰라.

 

 충격은 우리가 갑작스런 사고나 자연재해 그리고 죽음을 겪었을 때 나타난다. 여기서도 세네카는 기대를 낮추라고 이야기한다. 사고나 자연재해는 우리가 어떻게 피하거나 바꿀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세네카에 따르면 "운명의 여신(Fortune)"의 의지로 이런 것들이 생겨난다. 그러니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일어남직한 것 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평탄하다고 해서 내일 혹은 오늘 밤까지도 평탄할 것이라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 죽음 또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정상적인 것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한 번은 죽는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너무 자책하거나 비탄하지 말아라.

 

 불공평은 우리가 옳은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길 때 느낀다. 하지만 그 것 또한 운명의 여신의 소관이며 그녀는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보상이나 암시를 담고 있지는 않다. 평생 봉사활동하던 착한 사람이 고통스런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러한 세상의 변칙적 요인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그는 잘못한 것은 없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아라.

 

 근심은 불확실한 상황으로부터의 심리적 동요로 부터 온다. 근심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즐거운 상황에도 참여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주는데, 그것은 매우 잔인하다고 한다. 위안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없이 맞이하게 하고 그 후 거대한 비참함을 가져온다. 근심을 날리고 싶다면 그 상황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그 상황은 그리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소송에서 패할 경우 기껏 교도소에 가겠지 지금도 그닥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걸, 가난한 사람이 된다면 수 많은 가난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겠지, 유배를 간다면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여기지 뭐" (154쪽)

현명한 사람은 잃을 것이 없다. 잃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거나 그것 없이도 만족하며 살 수 있다.

 

 조롱은 생물체 뿐안 아니라 무생물체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빨리 내려오지 않는다거나 리모콘을 찾을 수 없다거나 하는 상황 등등. 우리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상처입힌 대상이 의도를 가졌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리고"로 연결 될 수 있는 문장을 "~하기 위하여"로 바꾼다.

 [오늘 나와의 약속을 미룬 친구가 다른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면 우리는 조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 더 우호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상황을 선입견에서 벗어나 조금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친구는 나와 약속을 만들기 전에 선약이 있었던 것을 잊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한 의도는 전혀 없었을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동기를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외부의 소음 또한 마찬가지다. 소음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은 우리에 대해 알지 못한다. 비록 소음은 달갑지 않지만 조롱이라고 여길 이유는 없다.

 

 현실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말한다. 개와 목줄을 예로 들었는데, 개가 목줄을 따라가면 그럭저럭 만족하는 산책을 할 수 있지만, 따르지 않으면 목을 조르는 줄에 억지로 끌려가야만 한다. 우리의 희망과 반대되는 현실에 반항하느라 힘 빼지말고 필요한 것을 정확히 파악하여 순응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아무것도 도전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말이다. 어떠한 상황이 왔을 때 우리가 바꿀 수 없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좌절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어서 목줄이 갈 길을 정확히 이론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과 숙명 사이의 느슨함을 적절히 확보함으로써 자유를 증대시킬 수 있다."

 

 

 

 감성에 휘둘려 사물과 상황의 본질에서 멀어지지 말고, 다른 것들에 대한 기대를 낮춰 상처받지 말아라.

 스스로 위로하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되어 좌절의 상황들에서 벗어나라.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좌절하게 하려고 마음먹지 않았고, 마음 먹었다 한들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상처받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이성을 찾아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은 징벌적이거나 보상이 아니다. 그냥 나에게 온 운명같은 것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