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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

20200111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4

by wohlsein 2020. 1. 11.

철학자들의 사상과 삶을 통해 위안을 주고자 만들어진 책.

이 책 속에는 독자에게 위안을 주는 6명의 철학자가 나온다.

 

 

4.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 몽테뉴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도 그리 덕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이성과 지혜는 자주 다른 동물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한다. 때로는 가진 이성을 놓쳐버리고 광기에 휩싸이고 만다. 누구나 멍청이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사람들 또한. 부족한 부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적절한 존재일 수 있다.

 

 신체. 어느 인간이든 신체를 가지고 있고 신체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방귀, 성욕, 혹은 발기불능 등. 많은 철학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나 외에 모든 사람들은 혹은 고상한 사람들은 신체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몽테뉴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엉덩이 위일세. 왕과 철학자들도 똥을 눈다네. 부인들도 마찬가지라네."(202쪽) 그러니 내 신체의 문제에 너무 낙담하지 말고 그대로를 인정해라.

 

 문화.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거만하고 성급한 것이다. 프랑스인인 몽테뉴는 10명 정도의 동행인들과 17개월 동안 다른 유럽지역을 여행했다. 각각의 나라들은 그들만의 정상의 범주가 있었다. 침대의 높이, 난방방식, 식사예절 등이 다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몽테뉴는 이해했다. 현대 시대의 우리 또한 여행이나 책을 통해 각 나라들의 다름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나라와 같은 큰 단위에 국한시키지 말고 개인에게도 적용시켜보라.

 대부분이 정상과 비정상을 귀납법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귀납법이란. A1, A2, A3을 각각 관찰하였을 때 @라는 공통점이 발견되면 A를 @라고 결론 짓는다. 사람을 판단할 때 또한 우리는 그러한 방법을 사용한다. 지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우리는 이제껏 만나왔던 지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공통점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지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하고 때로는 비난한다. 그것은 오만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알고있는 것은 많지 않다. 편견을 버리고 세심한 추론을 하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적이고 고귀한 사람들 또한 때로는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실수를 한다. 어쩔 땐 공개적으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시인하는 경우도 있다. 죽고없어서 잘못을 시인할 수 없는 고대의 인물들의 잘못된 확신은 새로운 지식인이 재정비하기도 한다. 그러니 인간의 감각과 이성에 대해 너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만약 누군가가 나를 비정상이라고 비난을 한다면? 그때는 우리는 근거가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 비난에 대한 부담을 없애려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다양성 속에 있어야 한다. 몽테뉴는 그래서 역사서부터 문학, 생물 등 다양한 서적들을 읽었고 그로부터 자신의 속성을 깨닫고 정상임을 느꼈고한다.

 우리는 세상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숨길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를 올바르게 이해해주고 긍정적으로 여겨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와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한 우정을 축복이라고 이야기한다. 몽테뉴는 진정한 우정을 가진 존재가 세상을 일찍 떠났고 그 이후로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책을 썼다. 책을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했고 정직하고 진솔한 내용은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너만 외로운 것이 아니라고, 혹은 나도 이렇게 비정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쓰는 것 또한 우정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혜.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머리에 넣는다.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앵무새처럼 그것을 옮겨 말하기에 급급했다. 도덕이나 윤리시간에도 우리는 깊은 이해보다는 지식의 범주로 암기수준의 배움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닌,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잘 이해한다는 것은 지혜와 상통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무능한 작가를 욕하든지 자신이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몽테뉴는 작가를 탓하라고 이야기한다. 지식인이 내용의 부실함을 감추기 위해 건 마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박한 단어들이 어리석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시절 농민과 여자와도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비유를 꺼내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지금도 존경받는 철학자이다. 그러니 책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심각하게 받아들여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똑똑하고 싶으면 일단 사실을 알아야 한다. 책에서 잘못된 정보를 보고 그냥 믿으면 안된다. 그리고 책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지는 않다. 그러니 더 나아가서 생각해야 하며, 위대한 사람의 책을 보고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두면 좋은 것이 또 있다면, 우리가 아는 위대한 사람들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리 경이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가족들에게까지 경이로운 존재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공간적으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가까운 연예인을 대할 때 그들의 가치를 비교적 야박하게 매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바보같은 모습을 다 알고있어서 가치를 평가할 때 편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이고 그러한 인생에서 언제나 지혜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있다면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지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최근 트렌드처럼 쓰이고 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좋은 철학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유독 애인만은 알고지낸 기간에 관계없이 나 자신과 굉장히 밀접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혹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긴다던가. 몽테뉴의 사상에 따르면, 아마 그것은 우리가 어쩌면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는 비밀스런 나체를 서로 공개한 사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 또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