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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

20191228 행복의 기원-서은국

by wohlsein 2019. 12. 29.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많은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기존의 수많은 철학적 관점으로부터 행복을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돈과 권력을 택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러한 수단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현재 그 수단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나고 있다.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은 생물학적 관점으로부터 새로이 행복을 정의했고, 그것은 다원의 진화론과 함께 한다. (저자의 기본적 사상은 에피쿠로스의 철학과 닮아있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진화되어 온 동물이다.

 동물의 삶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은 음식과 사람.

 그러한 수단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행복이 나타나게 되었다.

 

 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인간은 “사람”을 필요로 할까?

 “작고 약한 개미와 사람은 어떻게 지금까지 멸종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에 대한 대답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인간은 서로 정보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통해 위험을 피하며 목숨을 유지하며 생존해왔다. 이 작은 동물이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집단이 되어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행위(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게하기 위해 행복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내성적인 사람에 비해 행복도가 더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외향성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 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는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다.”

 

 그렇다면 수많은 한국인들은 왜 관계속에서 고통을 느끼나.

 그것은 집단주의 문화를 통한 “과도한 타인 의식”에서 나온다. 집단주의는 한국을 유래 없는 빠른 발전과 IMF로부터 위기탈출을 할 수 있게 했지만, 개인의 행복지수는 함께 발전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타인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문화 속에서 과도한 타인 의식이 생겨났으며, 과도한 타인 의식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행복을 찾게 했고, 많은 한국인들은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돈을 골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비교를 하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여기게 된다.

 인간에게 또 다른 인간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내 삶의 주인은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 타인(집단)의 시선보다는, 내가 보는 세상에 더 많은 가치를 두라는 말이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을 통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면 관계 속에서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있는 삶과 행복한 삶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은 없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삶이다.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비교대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즉 다른 사람의 시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삶은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책에서는 행복한 삶을 추천한다. 행복한 삶이란 일상에서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남들보다 자주 경험하는 삶이라 정의하고 있고, 이러한 삶이 미래를 건강하게 한다고 서술했다. 그러한 삶은 쾌락주의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말을 더하자면,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일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자주 다양한 행복을 느끼는 삶이 행복한 삶일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삶까지 동행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음식, 그리고 사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다.” 행복은 인간의 감정과연결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적 관점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인간이 왜, 어떻게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음식과 섹스, 혹은 사람. 쾌감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은 정말이지 쉽다. 우리의 뇌는 지극히 원시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나는 자주 이런 고민을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할까? 답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핑계 같지만,..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행복하고 싶었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 갈피를 잡지 못해 조바심까지 날 지경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알아야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것이 행복의 진정한 정의인지는 아직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도 추상적이라 언제든지 누군가 거창한 말들로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행복이 너무나 쉽고 가까운 것이라서. 그리고 그가 말한 행복한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또 다시 설렘과 행복을 느꼈다. 행복하다. 나에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