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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

20200322 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

by wohlsein 2020. 3. 22.

 어려우면서도 쉬운 혹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라는 평을 남기고 싶다. 특히나 인간의 특정한 감정이 정확하게 표현되었을 때의 짜릿함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너무나 세밀하게 표현했기 때문이고, 쉬웠다는 것 또한, 내가 가졌던 감정들, 표현할 수 없었던 불명확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건축 관력 책을 읽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자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건축가도 아니고), 전공자들을 위한 책을 쓰고자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건축을 하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건축가가 얼마나 다재다능하고 인간에 애착을 가져야 하는지, 도면의 선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땅의 기회를 빼앗는지(그래서 신중해야만 한다), 속된 말로 집 쟁이가 될 것인지 건축가가 될 것인지.

 

 그리고 이 작가의 표현력의 원천은 관찰력인 것 같다. 사물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은지, 그리고 자신이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자세히 서술하는 것.

 

 

 

 

 

 건축은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을 때,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가 줄어든다. 다른 것에서부터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이주는 밀어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가구를 탓하거나 가족 구성원을 탓하거나 물체(집)에 대한 관심을 버려버린다. 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을 때의 실망감과 슬픔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건 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집이라고 느끼는 공간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이상을 표현한 공간이라고 한다. 바쁘고 소란스러운 업무를 끝내고 편히 쉴 수 있는 고요한 요람같은 공간, 회색의 도시를 벗어난 목가적인 공간, 사무용기가 놓인 새하얀 박스공간을 벗어나 곡선의 테이블이 놓여진 마룻바닥이 있는 공간 등.(사람의 특성에 따라 소란스러운 곳, 종교적 느낌이 나는 곳을 집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심리적 이상 공간인 것이기 때문에 답은 없다.) 여기서 집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심리적 이상(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카페가 될 수도 있고, 클럽이 될 수도 있겠지?ㅋ

 

 집 같은 공간은 심리적으로 긍정적 방향으로 권유를 할 수는 있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떠한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공간의 메시지를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건축의 메시지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히틀러 시대의 건축물처럼. 우리가 집에서 받는 심리적 위안은 우리의 환경이 바뀌게 되었을 때도 더 이상 그 가치가 없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과 건축역사의 흐름도 이상의 변화, 환경의 변화에 맞춰져 있다.

 

 디자인된 물건들은 작가가 원하는 심리적 또는 도덕적인 태도에 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서 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가치로부터의 호불호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그 디자인에 작가의 가치가 들어있을 경우에).

 

 추상적 작품이 가져다주는 창의성도 우리는 들여다보고 그것이 주는 명확한 메시지도 읽고,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정확히 표현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암시에서 오는 명확한 유추가 주는 감동은 건축에서도 하는 방법이니까. 우리가 스터디를 할 때, 건축물에서만 사례조사를 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아무래도 조금 갇힌 사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답을 못 찾겠으면 추상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속성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고 의미 있는 것을 환기시켜줄 때 그 작품이 아름답다고 말한다.'88쪽

 

 

 

 

 우리는 어떠한 사물을 보면 항상 역사나 개인적인 것에 연상을 시킨다. 그래서 가끔 우리가 어떤 사물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 선호하지 않는 생물이나 인간을 연상하게 되었을 경우도 있다. 나는 자동차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산타페의 근육질 느낌과 소렌토의 통통한 느낌 중 개인적으로 근육질 느낌의 산타페를 더 좋아했다ㅋㅋ 그런 와중에도 진정한 작품은 우리의 호불호를 넘어서 시간이 지나서도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명확한 자신의 속성을 먼 훗날에도 굳건히 보여주는 것.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땐, 묘비를 세우는 것과 같이 소통과 기념을 향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이에게 들어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덧붙여 자기자신도 완성하는 작업.책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에세이를 읽을 때 종종 그런느낌을 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 꾸며진 자신을 다른이에게 알리고, 자신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혹은 그로부터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삭제해버리고자 하는 그런 느낌. 우리가 그러한 작업들을 하려고 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내적으로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다른 건축 관련 책과 마찬가지로 르 코르뷔지에가 나온다. 이 건축가의 업적을 인정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건축을 완성하지 못한 건축가의 사용자에 대한 부족한 관심(혹은 놓쳐버린 중요한 포인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건축가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한 기여를 했지만 그 세대 사람들에게는 많은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난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그의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들이 말을 잘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건물의 사용자들은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건축가의 결단으로부터 나온 공간이 아닌 사용자와의 소통으로 생긴 공간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주나 사용자의 요구보다는 그의 건축 철학을 펼치기 위해 더 노력을 했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힘들다.(비록 그의 건축 철학이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르 코르뷔지에는 새로운 재료로 창의적인 공간을 형성했다. 하지만 선구자의 길은 험난했고,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힘들었다. 거의 모든 새로운 시도들에는 고난이 뒤따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나 과거의 초가집에 머무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우리는 한옥의 현대화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처럼 실패한 모습이 있더라고 언제나 시도는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과거의 디자인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디자인 주목받는 이유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모습이 왜 아름다웠는지. 어떤 모습이 이목을 끌었던지. 

'전통적인 건축 스타일의 성공적인 현대적 재해석은 우리를 미학적 수준에서만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여러 시대와 나라를 종합할 수 있다는 것, 현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의지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선례와 지역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52쪽

 

 

 

 

'우리는 천재가 단순해 보이게 만들어 놓은 복잡함에서 기쁨을 느낀다' 221쪽

 

 

 

 

대놓고 복잡한 건물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정리되지 않은 평면만으로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도 있다(그러한 형태에서 훌륭한 건물을 만드는 것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깔끔하고 경쾌한 건물의 깔끔한 내부 공간을 경험했을 때의 감탄은 그 어떤 화려한 건물을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깔끔한 내부 공간은 복잡한 건물의 모든 공간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깔끔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지금 떠오르는 건축가는 자하 하디드와 안도 다다오.

 

미술작품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낯선 신기한 요소들을 덧붙인 것보다 선 몇 개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나는 작품을 더 멋있게 바라보기도 한다. 심플하지만 모든 것을 표현했고, 의도를 쉽게 유추할 수 있을 때. 그때 그 작품의 예술가를 천재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의 아름다움은 주변과의 조화를 이룰 때 더 빛을 발한다. 주변의 환경, 지나온 역사의 맥락이 함께 했을 때 그 가치가 더욱 커진다.

 

우리가 도시개발보다 도시재생을 더 좋아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우연한 발견의 기쁨'. 사람들은 언제나 감동받고 놀라고 싶어 하지도 않고, 언제나 고요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언제나 깔끔하기만 원하지도 않고 너저분한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조화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마음의 위안도 주고, 우연한 발견의 기쁨도 준다.